하윤정은 “한때는 제가 당구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는 줄 알았어요.”라며 웃는다.
하윤정은 대대입문 1년 만인 2020년 LPBA에 데뷔했다. 데뷔 이듬해인 2021~22시즌에 랭킹 29위를 기록한 하윤정은 곧바로 ‘LPBA 월드챔피언십’에 진출하며 유망주로 각광받았던 적도 있었다.
이번 시즌 하윤정의 포인트랭킹은 44위이다. 지난 3월 15일에 끝난 우승상금 1억원이 걸린 ‘하나카드-하나캐피탈 LPBA 월드챔피언십 2025~2026 제주’에 하윤정은 출전하지 못했다. 랭킹 32위까지만 출전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윤정은 얼마 전까지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그냥 평범한 여자당구선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끼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어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서 이를 악물었어요.”
하윤정의 현재까지 최고 성적은 2021~22시즌 3차투어인 휴온스배 8강이며, 이후로 16강에 두 번 더 올랐을 뿐이다
하윤정은 “한동안 깊은 자책감과 무력감을 느끼며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저를 잘 아는 지인들도 제가 힘들어하니까 차라리 그만두라고 하더군요”라고 고백한다.
하윤정은 12살 때인 2005년, 어머니와 4살 터울 언니와 함께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미국에서 수퍼마켓을 운영하는 어머니 덕에 자매는 공부에 열중했다. 어릴 적부터 건축가가 꿈이었던 하윤정은 2012년 미국 USC(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대학교 건축학과에 입학했지만, 이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을 느꼈다.
하윤정은 경제학으로 전과(轉科)를 선택했다. 2년 간의 휴학 기간을 포함해 총 6년 만인 2018년 9월, 하윤정은 졸업과 함께 경제학과 학위를 취득하고 나니 또다시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겨났다.

철이 들면서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하윤정은 무조건 취업을 하는 것보다는 먼저 다양한 경험을 쌓기로 마음먹고 2019년 9월 무작정 짐을 싸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윤정은 직업을 구하기 전까지 당구장에서 알바를 시작했다. 미국 한인타운 당구장에서 한국당구를 즐겼던 덕에 4구 200점이던 하윤정은 처음 접한 국제식대대에 푹 빠졌다. 아르바이트 짬짬이 대대에 입문해서 3개월 만에 18점.. 그리고 또 20점…
때마침 프로당구 LPBA가 인기를 얻을 때였고, 매일 빌리어즈TV를 시청하던 하윤정은 프로당구선수가 되기로 마음먹고 본격적인 준비를 거쳐 이듬해 LPBA에 데뷔했다.
엄마의 걱정은 “스포츠 선수는 상위 몇%를 제외하고 먹고 살기 힘들다?”
미국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어머니는 한국에 들어간 딸이 프로당구선수를 하겠다는 말을 듣고 걱정이 태산같았다고 한다. 흔히들 스포츠선수는 상위 몇프로를 제외하고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그랬다.
아니나 다를까 딸이 성적이 나지 않는 정체기를 겪으며 힘들어하자 어머니는 “체구도 작고 힘도 약한 네가 그 어려운 종목을 선택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며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어떨까?”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서운해하면서도 절대 포기할 줄 모르는 딸의 너무도 확고한 신념 앞에 결국 어머니는 딸을 전폭적으로 응원하기로 했다. 이제는 한국에 올 때마다 경기장을 찾아 딸의 경기를 직접 관전하기도 하고 피드백을 주기도 하는 든든한 응원군이 되었다.
하윤정은 요즘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과연 내가 후회 없을 정도로 준비를 많이 했었나? 쟁쟁한 챔피언들보다 내가 더 연습을 많이 했었나?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졌어요. 결론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어요.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잖아요.”라고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힘에 부칠 때마다 자신의 꿈을 응원해주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다시 이를 악문다.
최근 연습방법을 바꿨다는 하윤정은 이제 차기 시즌이 개막하기만을 기다린다. 남은 기간 더욱 채찍질과 담금질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을 응원해준 어머니께 보답하는 길이고, 자존감을 높이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산 – 정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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