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진천의 장애인당구경기장에서 만난 한택주 선수는 여태 만나본 휠체어 당구선수 중 가장 행복해 보였다.
이제 환갑을 앞둔 한택주 선수는 6년 전 54살에 처음 큐를 잡아봤다고 했다. 큐 잡은 지 1년 만에 장애인당구선수가 되었고, 현재 5년차 부산광역시 대표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부산에 휠체어 당구선수가 없어서 부산 대표로 전국장애인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부산1호 휠체어 당구선수입니다.”라고 말하는 한택주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택주는 소아마비 장애로 2살 때부터 목발을 짚고 다녔다. 성인이 되어서야 사고로 장애를 얻은 사람들과 비교하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장애를 받아들이면서 살아온 셈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한택주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동생들과 함께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소년 한택주’는 16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첫 직업은 구두닦이였다.
담담하게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는 ‘소년가장 한택주’의 이야기를 메모하느라 인터뷰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사무실에 돌아와 기사를 정리하면서 당시 소년가장 한택주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던 기자의 가슴이 저려왔다.
부모의 품에서 한창 사랑받아야 할 시기에 소년가장이 된 한택주는 할머니와 동생들 생활비와 학비를 버느라 고생인 줄도 몰랐다고 했다.
정상인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던 소아마비 장애인 한택주는 소년가장에게 주는 대통령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허나,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제 몸을 돌보지 못했던 한택주는 어느덧 목발로도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휠체어에 의존해야 했다.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는 법! 창업한 ‘천사의 손’ 명품수선샵 대박!
치열한 삶을 살았던 청년 한택주는 몇 가지 관련 직업을 거쳐 명품수선일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절실하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왔던 그는 타고난 손재주를 바탕으로 어느덧 명품수선의 匠人(장인)이 되어있었다.
명품 핸드백과 명품 구두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로 인정받은 그는 부산 해운대 인근에 ‘천사의 손’이라는 명품수선샵을 오픈했다. 16살 때부터 44년 경력을 지닌 한택주는 대한민국 최고의 장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며 대박을 쳤다.
그 사이 한택주 선수는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들을 둔 행복한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버지의 소질을 이어받은 큰아들은 일찌감치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
최근에는 장교로 전역한 작은 아들과 두 며느리까지 합세하니, ‘천사의 손’ 명품수선샵은 가업이 되었다.

부인와 자식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부산대표 휠체어 당구선수로 활동
예전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생긴 한택주는 좋아하던 운동을 시작했고 5년 전부터는 당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휠체어당구인이 일반당구장에서 활동하기에는 제약이 너무 많았다.
한택주 선수는 아예 사무실에 국제식대대를 설치하고 맹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만에 부산 대표로 장애인체전에 출전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아직 입상이 없는 5년차 당구선수 한택주 선수는 현재 24점의 핸디로 최근 4강에 오르기도 했다.
부산장애인당구협회에는 20여명의 장애인선수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 휠체어 선수는 남자 7명 여자 2명이나 된다. 한택주 선수는 부산장애인당구협회 선수위원장으로써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택주 선수는 “어렸을 때부터 고생인 줄도 모르고 장애를 가진 몸으로 가족들을 돌봤어요. 이제 부인과 아들 며느리가 적극적으로 응원해주니 당구에 집중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저처럼 행복한 선수는 드믈거에요.”
장애인당구대회에 출전할 때면 부인과 같이 동행하는 한택주 선수는 “당구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아내와 같이 전국을 여행하다보니 신혼처럼 설레입니다.”라며 부인(섬네일)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방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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